그 고양이가 물고 있던 레몬에서 즙처럼 떨어지던 핏방울

by 핏빛고양이
24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뜨거운.

JH는 그간 변한것이 없었다. 머리는 조금 더 길고 약간 살이 빠진듯도 하고 나이가 든 흔적도 느껴졌지만 예의 느끼한 말투와 거침없는 비속어 사용, 그러면서도 반듯한 매너와 배려하는 태도, 한국인이 아닌듯한 그 태도들 까지 변한 것이 없었다. 근 1년만에 만난 것임에도 어색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이전에도 관계를 규정하지 않는 애매한 호의를 던졌었고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고양님은 되도 않는 영어질을 다 알아줏어들어준다는 점에서 JH에게 약간의 메리트를 더하면서 '한국 아닌 곳에서 한국 씹는 듯한'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대화가 계속된지 두시간 여 만에 JH는 비스듬한 대각선 자리에서 바싹 당겨와 앉는 마주 보는 자리로 옮겨왔다. 탁자에 기대어 있는 그의 팔꿈치가 고양님에 대한 호의를 상징해준다는 그 옛날 무슨 TV쇼를 떠올리며 내심 흐뭇해 했다.

맥주를 조금 마시고 나왔을 뿐인데 그는 고양님을 보내지 않으려 들었고 아니나다를까 섹스인가, 라는 기분에 적당히 웃으면서 스스로의 꼴림과 내킴을 점검하는데,

- 그럼 sobering 하고 갈래? 노래방? 아님 좀 걸을까?

흠, 작전인가,
노래방을 골라잡고 맥주 조금을 더 마시며 신나라고 부르다가, 또 나왔다.

- 이제 운전 괜찮겠어?

엄훠, 이거 내쳐지는 건가,
괜찮겠다 하는 웃음과 끄덕임을 다소 못믿는듯한 태도를 보이고는, 괜히 떠들며 걷기 시작했다. 산책이라니 그런건 고양님의 매뉴얼에는 없는데,
그러다 강남역 뒷골목 길가에 앉았다. 야야, 이건 스물 한살때 그만뒀어야 하는 거잖아,
그러고는 뭉쳐있는 목 뒤를 안마해주고, ... 이건 스물 둘인가;

그리고 목 뒤를 스치는 따뜻한 입김과 바삭하지도 축축하지도 않은 입술의 부드러움과, 낮게 앉은 두 시선 앞으로 다리들만 오고가는 비탈진 골목길에서, 간지럽지도 따갑지도 않은 턱수염이 조금 스치고 소름을 한 박자 깔아가며 흠칫, 앗 이런 흠칫 그 자체가 너무 오랫만이라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러한 소름을

- 긴장하는거 귀여워.

그건 당신이 너무 오래된 기억들을, 너무 오래되어서 누군가에 대한 언젠가의 기억인지 되짚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기억들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야. 몸 만이 저혼자 기억하고 있던 그 즈음의 그런, 강남, 길, 쓰레기차의 운행과 PC방을 나오는 사람들의 담배냄새, 소음이 한 켜 깎여 나간 정도로 날아오는 뒷골목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가로등, 드문드문이라기에는 은근히 끊이지 않는 행인들과
그 행인들더러 보란듯이 고양님의 턱을 끌어오는 손, 도대체 턱을 살며시 들려 키스한 것이 언제인지, 다 떠나서 침대 위가 아닌 곳에서 누군가와 처음 키스하는 그 자체가 얼마만인지, 그런 생각들 조차 나중에 든 것이고 그저,
그 다음 진도를 향해 가지 않는 알맞은 키스.

고양님은 곧 서른인데
더군다나 당신에게 반하지도 않았는데

그 키스만 하루 종일 떠올리면서
아득히 목덜미에 열만 올리고.

by 핏빛고양이 | 2009/09/02 21:4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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