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가 물고 있던 레몬에서 즙처럼 떨어지던 핏방울

by 핏빛고양이
살아낸다는 것
일이 잠시 소강 상태에 든 틈을 비집고 멍이가 찾아왔다. 고양님은 오랜 친구 멍이를 툭툭 때리며 후두둑 떨어지는 잡념의 파편들을 골라먹었다. 가장 질리지 않는 것은 역시 지난 밤에 대한 곱씹기. 어떻게 엮어서 방에 들고 어떻게 엮어서 침대에 들고 어떻게 엮어서 서로의 배에 들었는지, 과정을 곱씹는 것은 즐겁다. 지난 밤이 근래 들어 가장 화끈한 밤이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은 어쨌든 그놈과 함께한 지난 밤은 즐거웠다.

그는 고양님의 X들 중 하나. 고양님은 X들만 주루주루 둘러 만나는 그런 한 주를 보낼 수 있을 만큼 그들과 친밀하고 긴밀하고 여전히 농밀하다. 그놈들은 반갑게도 매년 스킬 업그레이드도 해주시고 친절함 상승도 해주시고 소탈함 추가까지 해줘가면서 술친구, 담배친구, 섹스친구들이 되어주고 있다. 말이 친구지, 이런 건 친구라기 보다는 '살아낸다는 것'의 동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고양님은 그들에게 연민 아닌 연민, 동질감 비스무리한 마음 싸함을 느끼면서 그렇게 그들과 더불어 '살아내고' 있다.

그를 만나기 전에 고양님은 사실 이미 취해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글쓰는 친구, W는 이번 공모전 넣었냐는 말로 묵은 인사를 시작했다. 몰랐는데, 라고 말하는 대신에 고양님은 그저 웃었다. 너는? 이라고 묻자 W는 3개, 라고 머쓱한 듯한 뿌듯함이 묻어나는 미소로 답했다. 속으로 빌어먹을 새끼, 라고 생각한 것은 애교로 봐주자. 고양님은 그저 이런거 부럽다고 말하는거 쪽팔린건데, 라고 밖에 대꾸할 수 없었다. 그 어설픈 대꾸가 스스로 부끄러워서 그냥 그 대화를 접을 만도 했건만, W가 굳이 이어가지 않았더라도 고양님은 적당히 맞춰주고 던져주고 찔러주며 공모전 화제를 유지했다. 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역시나,

사는건 힘들고 그래서 글을 쓸 여가가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유쾌하게 잘 이겨내는 척 하면서 덧붙였다.

그로부터 하루 전이던가, 지난 밤의 그 X군이 말했었다. 나 별로 재능이 없더라구. 억지로 연기하듯 해야 하더라구. ... 고양님은 X군과 마주 씁쓸한 웃음을 맥주병에 토해내고 다시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다. 그의 최근 여자친구, 아니 그의 유일한 사랑인 그녀가 다시 연락질을 해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재미있고 그의 최근 소송건, 정확히는 그가 휘말린 송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 같아 끌고 간 화제의 끝이 재능_ 그 따위 단어에 걸려 넘어질 줄이야. 고양님은 애써, 세상에는 번쩍이는 재능으로 화려하게 모두의 위에 서는 사람이 있는 한편으로, 그런 사람들만으로는 시장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같잖은 재능으로 그 후광 아래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거야,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저렇게 말했다. 더군다나 진심이었다.

W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죽음에 대한 몇마디 시덥잖은 촌평과 그의 글을 도용해 간 개자식에 대한 고양님의 응분에 동해서 즐거워했고 W가 끌고 나온 친구는 최근 자살 시도를 했던 것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비난을 가한 직후 바로 무한 공감질 해주었을 뿐인데 고양님과 한없이 취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고양님은 글에 대한 부끄러움 따위 들키지 않고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그 X 군이 생각났다.

요새 몇번인가 나쁘지 않은 섹스를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굳이 새삼스러울 것이 있겠느냐만은, 공감의 깊이가 유난했다 하자. 침대 바로 아래에서 출렁이는 연민이 그에 대한 것인지 고양님에 대한 것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그저, 살아내는 것은 얼마나 많은 몸부림치며 잊고 싶은 일들을 감춰가는 것인지, 에 대한 땀구멍 하나하나를 막아오는 갑갑함을 몸부림치며 잊고 잊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몸 안의 움직임을 느끼고 모든 정성을 다해서 그의 성기를 빨았다.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았다고 꼿꼿이 선 그는 반복해서 말했고 아무것도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출렁거리는 고양님은 끊임없이 주장했다.



아침엔 변함없이 머리가 아파왔고
출근 시간에는 늦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잠이 왔다.

이제 그만 잠시 다시 멍이나 투닥투닥 때린 후에 일로 돌아가야지.. 하고 보니 퇴근시간을 한시간이나 넘겼구나...
by 핏빛고양이 | 2009/08/31 23:0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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